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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문화 시대의 도래


1. 서울은 성형수술 중

서울은 어디를 가나 공사판이다. 아파트, 빌딩, 상가, 사무실 등이 신축, 재건축, 리모델링으로 일명 성형수술 중이다. 간혹 무분별한 난립공사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늘어나는 공간수요를 충족시키고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는 도심재창조 프로젝트는 필요하다.

요즘 창조도시, 문화도시의 지향과 실현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예를 들면, 중국 상하이는 국제금융허브의 위상을 위해 문화적 도시환경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 일환으로 동방문화센터를 건립하여 아시아 최고의 문화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창조도시의 모범인 이탈리아 볼로냐는 오랜 역사적 건물을 활용, 최첨단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함으로써 인구 42만의 국내 제2의 부자도시가 되어 세계의 이목을 받고있다.  스페인의 빌바오는 버려진 폐광촌이었지만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여 세계적인 문화관광 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서울을 문화도시로 재창조하기 위한 작업을 실행하고 있다. 그 작업 중의 하나는 광장문화 조성이다. 서울시는 시민들의 쉼터이며 나눔과 소통의 문화의 장으로서 광장문화를 서서히 확대해가고 있다. 시청 앞 서울광장을 비롯하여 청계천광장, 숭례문광장은 이미 형성되어 있다. 또한 광화문부터 청계천로를 잇는 세종로 중앙에 ‘광화문 광장’이 2008년까지 들어설 예정이다.

2. 광장문화의 의미

광장은 너른 마당을 뜻하며, 사람들이 모여서 상호교류를 꾀하는 곳이다. 예로부터 광장은 도시의 중요한 공간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도시의 중앙에 있는 넓은 광장을 아고라(agora)라고 불렀다. 그곳은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자, 정치적 토론과 새로운 사상의 산실이었다.

사도 바오로는 아테네에 있는 아레오파고에서 그리스인들이 믿는 ‘알지 못하는 신’이 바로 하느님이며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인규의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복음을 선포하였다(사도 17,16-34 참조). 아레오파고는 지식인들이 모여 사상이나 의견을 주고받던 문화광장이었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광장문화는 영국의 스퀘어(square), 이탈리아의 피아짜(piazza) 등으로 이어졌다. 광장은 이렇게 시민들의 자유로운 집회장소이자, 길거리 공연이 벌어지는 문화의 터전이 되어 왔다.

그러나 냉전시대에 광장은 매우 부정적 이미지를 남겼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중국 북경의 천안문광장, 북한 평양의 김일성광장, 한국의 여의도 5.16광장 등은 전제주의 국가의 유산이었다. 냉전시대의 광장은 개인의 내밀한 삶을 억압하고 지배,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여의도 광장은 과거 유신체제 하에서 각종 군사퍼레이드와 대규모 반공궐기대회가 열리는 전체주의적 대중동원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당시 얼마나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각종 국가행사에 동원되었던가?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은 남북 이데올로기 갈등을 철저히 경험한다. 그는 주어진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내밀한 삶의 공간인 ‘밀실’과 사회적 삶의 공간인 ‘광장’ 사이의 상호작용의 관계를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제3국행 배 갑판 위에서 투신자살한다. 그러나 은유로서의 자살은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 바다로의 침잠, 즉 밀실과 광장의 새로운 조화를 이루게 해주는 바다를 찾아가는 관문인 것이다.

3. 소통으로서 광장

21세기 문화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광장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이 열렸을 때 시청 앞이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축구경기를 보며 수만 군중이 서로 하나 되어 열광의 축제로 광장이 되살아났다. 그해 겨울 미군 장갑차에 치어 사망한 여중생 추모 열기는 시청 앞을 시민의 광장이 되게 했다. 이제 광장은 시민이 나팔수가 되는 다용도 공간이 되었다.

요즘 개인의 내밀한 삶의 공간인 밀실이 상업주의에 물들고 이기적으로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의 영역인 광장은 필연적이다. 대중과 호흡하는 문화공간으로서 광장은 상실되고 있는 공동체 정신을 일깨운다. 한 예로, 인사동 종로 초입의 남인사 마당은 대중과 호흡하는 문화공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곳에서 작은 공연들이 연일 열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관객들이나 두 손을 꼭 잡은 연인, 삼삼오오 짝을 진 젊은이들이 계단과 주변에 앉아 음악을 듣고 즐긴다. 따라서 공연자와 관객이 자연스럽게 상호 소통하면서 광장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대부분이 소비와 자본축적을 위해 상품화된 공간, 자칫 삭막하고 무미건조해질 수 있는 도시의 일상에서 함께 고민하며 의견을 나누는 의사소통의 공간이 절실하다. 각종 예술, 사교, 오락, 집회 등이 한데 어우러지는 장소, 일상의 탈출과 다양한 만남 및 소통, 그리고 새로운 삶의 활력을 위해 신명나는 축제의 공간으로서 광장이 필요하다.

관광특구이며 상업중심지역으로 지정된 명동으로 눈을 돌려보자. 백화점, 쇼핑몰, 음식점, 카페, 상점, 술집, 노래방, 대형마트 등 수익성을 위한 사적 공간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소비의 풍요와 편안함을 즐긴다. 반면에 정신적 빈곤을 느끼며 심신의 휴식을 찾고자 한다. 교회의 대사회적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상업성에 점유된 삭막한 명동 지역사회에서 교회가 하나의 대안공동체로서 젊은이들의 영적, 정신적 휴식과 만남의 장인 광장을 제공할 때, 그 광장은 사막의 오아시스가 되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광화문-시청-숭례문-청계천-명동으로 이어지는 광장이 우리 모두에게 여가와 친교, 나눔의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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